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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말을 지키려했던 스토리를 담은 영화 '말모이'가 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유해진, 윤계상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택시운전사 각본을 맡은 엄유나씨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이있습니다. 일제에 무력으로 항거하는 소재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번 영화는 주제가 다소 특이했습니다.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만드는 것이라니... 과연 어떠한 드라마가 나올지 궁금했었는데 감동과 스릴를 가미해서 흥미진진한 영화가 된 것 같아요.

 

말모이의 뜻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입니다. 주시경 선생님 등이 1910년 무렵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하려다 끝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극로 대표

 

영화 배경은 1940년대 한반도이며 말모이의 윤계상이 맡은 역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류정환의 실제 모델이자 당시 조선어학회 대표는 이극로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티브는 '조선어학회 사건' 입니다.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어학회. 둘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극로 대표

 

일본은 1930년대 후반부터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여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습니다. 창씨개명으로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게 하였으며 조선어로 출간한 신문사는 폐간시키고 학교에서도 일본어로만 쓰게했습니다.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제창하게했지요. 태평양전쟁과 중일전쟁에 한국인을 참전시키고 전쟁 물자를 더욱 더 약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30년대까지는 우리말을 사용해도 큰 탄압은 없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등 소수 신문사에서는 한국어로 발간도 했었죠. 1936년에는 동아일보에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우는 사건으로 폐간되었고 나머지 신문은 1940년 폐간되었습니다. 인쇄물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원천 봉쇄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어학회에서 발간한 잡지 '한글'

 

조선어학회는 1921년 12월 창립되었습니다. 민족문화의 수호인 사전을 만들기 위한 일이 시작되어 사전 편찬의 바탕이 되는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0)' 등을 제정하는 등 한글을 연구 및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한글 탄압이 거세지면서 사전의 편찬을 서둘러 1942년 4월 그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어휘를 정리하여 원고를 1942년말까지 인쇄소로 넘기기로 하였죠.

 

하지만 함흥 영생고등여고의 여학생 박영옥이 기차안에서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취조를 받던 중 조선어사전 편찬원 정태진 이름을 말합니다. 이를 빌미로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단정지은 뒤 관련자들을 일제 검거하게 되죠. 일본은 사전 원고과 서적들까지 전부 압수하여서 '조선어 대사전'의 출판은 무산됩니다. '치안 유지법'의 내란죄 죄목으로 33명이 체포되어 16명은 수감되고 12명은 기소유예 처리를 받게되고 수감된 16명중 2명은 옥사하고 1945년 해방이 되어서야 풀려나게 됩니다.

 

조선어학회 대표였던 이극로 선생은 1948년 김구의 남북 협상때 민간 대표로 북행하여 그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분단 후 북한의 어문 정책을 기획하고 '문화어 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한국어 사전의 완성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된 민족의 숙원 한글 사전 편찬 작업은 광복 후 1947년 '조선말 큰사전' 첫권이 나아고 1957년 드디어 '큰사전' 6권이 완간됨으로서 국어생활의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한글은 세계에 수많은 언어 중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꼽힙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의 언어가 체계적으로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싸웠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